무사히 행복하게
83.
시경은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재신의 다리를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조금은 뜨거울 법도 한데 다리에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재신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참을 시경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재신은 어느 순간 시경의 이름을 외던 입술을 멈추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시경의 품으로 쓰러졌다. 급하게 근위대원들이 달려왔지만 시경은 자신의 두 팔로 재신을 안아들고 일어섰다. 재신과 시경의 모습을 보며 재하가 겨우 눈가를 쓸어내리고는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네, 다 무사해요 아저씨.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요, 전 괜찮아요. 재신이랑 은시경이… 일단 오늘은 귀국할 수 없을거 같고 내일 곧장 들어갈게요. 수습 좀 부탁드려요. 네, 네.」
전용기에 사소한 고장이 생겼다는 핑계로 하루의 시간을 얻었다. 재하는 쉴 틈도 없이 규태와 통화하며 시나리오를 짜맞췄다. 타박상이 심한 시경은 반군의 작은 테러가 있어서 경호를 하다 다친 것으로 했고, 재신은 과로로 쓰러져 모든 공식행사를 취소하고 궁에서 나오지 않는 것으로 했다. 분명 언론에서 말이 많겠지만 조금 버티다 재신의 상태가 나아지면 얼굴을 비추게 할 생각이었다. 재하는 재신을 안고 있는 시경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뺨에 난 상처와 여기저기 타고 찢어진 옷, 그을린 머리카락, 겨우 힘을 주고 서 있는 것이 분명한 다리. 재하의 표정을 본 시경이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다.
「전하.」
「왜.」
「제 바지 주머니에… 제가 지금 공주님 때문에 손이 없습니다.」
재하가 시경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자 구겨진 종이 몇 장과 작은 USB가 잡혔다. 뭐야, 이게. 이 쪽 정부와 클럽M이 맺은 밀약서와 관련 파일들입니다. 폴더째로 급하게 쓸어오느라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경의 나직한 설명에 재하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야, 이 미친 자식아. 이런거 가져올 시간 있으면 너나 빠져나와!」
「죽을거 같았으면 그냥 나왔습니다. 공주님도 피신하신 것 같고 빠져나올 시간 있을 것 같아서 가져온겁니다.」
와, 이 자식 진짜. 야. 너. 아오. 재하가 붉어진 눈을 벅벅 닦고는 시경을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재신이 못봤어? 그냥 나와, 좀. 어? 너 좀만 늦게 나왔으면 어쩌려고. 아, 진짜 이 자식이 진짜. 몇마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휙 돌아서는 재하를 향해 시경이 슬쩍 웃었다. 고맙다. 1중대장이 급하게 구해온 차량에 오르며 재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도 재신은 깨어나지 않았다. 재신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시경을 항아가 겨우 떼어놓았다. 내래 공주님 씻길건데 따라 들어오시렵네까? 은시경 동지도 가서 수습하시라요. 이따 부르갓소. 항아에게 떠밀려 자신의 방을 향해 걷던 시경의 눈에 치료를 받고 있는 부하들이 들어왔다.
「염동하.」
「대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고생 많았다.」
찢어진 눈가를 소독받고 있던 동하가 씩 웃어보였다. 대대장님만하겠습니까. 바닥에 철퍽 주저 앉아 있는 서 중사는 상관 앞에서 예의가 아닌걸 알면서도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경이 성큼성큼 서 중사에게 걸어가 서 중사의 짧은 머리에 손을 얹었다. 고생했다. 고맙다. 아, 아닙니다! 괜시리 눈물이 날 것 같아 서 중사는 일부러 크게 대답했다. 보체접촉조항 어겼다고 벌이나 주지 마십쇼. 쟤가 공주님 모신거 보셨으면 기겁하셨을겁니다. 공주님을 완전 짐짝처럼… 동하의 농담 섞인 말에 시경을 포함해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겨우 웃음을 터뜨렸다. 목숨을 걸고 공주를 지킨 제 부하들을 보는 시경의 눈이 따뜻했다.
씻고 상처 치료를 시경은 조심스레 재신의 방문을 열었다. 재신은 한 번도 깨지 않고 기절한 듯 잠들어 있었다. 시경은 의자를 끌어와 재신의 침대 옆에 앉았다. …공주님, 다리 안 움직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휠체어 타시고, 억지로 워킹 수트 써서 걸으시긴 했는데 발목이 옛날처럼 아예 꺾여 있으셨습니다. 동하의 조심스러웠던 목소리가 시경의 가슴을 쓰리게 스쳤다. 발 끝까지 덮어진 이불을 걷고 재신의 발바닥과 정강이를 손바닥으로 쓸어봐도 재신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경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이미 항아가 깨끗하게 닦아준 재신의 다리를 다시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은시경 동지도 좀 쉬시라요. 왕비님이 더 휴식이 필요하십니다. 전하께서도 그걸 바라실거고요. 작게 실랑이를 벌이던 항아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시경은 비로소 재신과 온전히 둘이 되었다. 잠들어 있는 재신의 얼굴이 창백했다. 고작 며칠 못 본 것 뿐인데 눈가는 붉게 물들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 며칠이 떨어져 있었던 2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지. 다시는 재신을 혼자 두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시경은 재신의 손을 들어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그새 마른 손가락에서 딱 맞았던 반지가 헐겁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시경씨."
"공주님."
메말라 갈라진 목소리가 시경을 부르자 시경은 번뜩 고개를 들었다. 눈을 뜬 재신이 시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일으켜달라는 듯 재신이 두 손을 뻗자 주저하던 시경은 재신을 안아 일으켜 침대에 기대게 해주었다. 잠이 덜 깬 듯 멍한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재신이 손을 들어 길게 상처가 난 시경의 뺨을 더듬었다.
"이게 뭐야, 속상하게…"
"그냥 긁힌 정도입니다. 흉터도 안 남을거에요."
"시경씨 몸에 또 상처 생기는거 싫어. 어디 봐요. 또 어디 다쳤어."
"괜찮습니다. 정말이에요."
"거짓말. 빨리."
입술을 앙다문 재신이 시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시경의 소매를 걷고 셔츠를 들어올린다. 팔에 새로 난 상처 자국들과 붕대가 감겨 있는 어깨를 보는 재신의 눈이 아프게 젖어들었다. 상처를 매만지는 재신의 찌푸러든 미간에 시경이 가만히 손가락을 대었다. 그리고 이내, 여린 몸을 끌어당겨 품에 가두었다.
"혼자 얼마나 힘드셨어요."
"…시경씨는 또 붙잡혀 아픈 짓 당했잖아. 이게 뭐야…"
"공주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송해요, 공주님."
"죄송하단 말 싫다니까! 이게 왜 시경씨가 죄송한 일이야!"
재신이 시경의 품 안에서 빽 소리를 지르자 시경이 다시 재신의 등을 도닥인다. 흑, 시경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은 재신이 울음을 삼키자 울지 마세요, 우시면 열 오르세요. 재신을 진정시키려 시경이 몇번이나 재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서웠어. 나 혼자, 무서웠어. 다신 못 만날까봐… 이대로 나 혼자 될까봐… 겨우 터져나온 마음을 시경이 온 몸으로 끌어안았다.
이리 올라와요. 재신이 이불을 걷어주자 시경이 침대 위로 조심스레 올라왔다. 자리를 비켜주려던 재신의 몸이 멈칫했다. 그 모습을 본 시경이 재신을 약간 옆으로 옮겨주자 재신이 그대로 시경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다리… 금방 다시 돌아오겠지?"
"그럼요. 한국 돌아가서 검사 받으시고 좀 쉬시면 금방 괜찮아지실거에요."
"시경씨는?"
"…네?"
"오른손. 움직여?"
"…아셨습니까?"
"나도 왼손 오른손정도는 구별해요. 그 땐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방금 생각났어. 손… 문제 있는거죠."
조심스러운 눈길에 시경이 재신이 원하는대로 오른손을 내어주었다.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여전히 파르르 작게 떨리는 시경의 오른손을 재신이 양손으로 꼭 쥐었다. 저도 곧 괜찮아질겁니다. 그 말에 힘을 더하듯 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먼저 낫나 내기할까요? 재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씩 웃는 시경의 어깨를 재신이 톡 쳤다. 뭐래는거야. 들어가면 은시경씨는 왕실 주치의랑 24시간 붙여놓을테니 그렇게 알아요. 재신에게 오른손을 맡긴 채 시경이 다른 팔로 재신의 어깨를 감쌌다. 품 안 가득히 재신의 체온을 느끼고 향기를 맡자 겨우 현실의 실감이 났다. 다시 함께라는 실감이. 시경에게 기대어 시경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재신이 몇 번을 망설이며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이… 나한테 그랬어. 내가 죽으면 은시경씨가 살고, 내가 살면 은시경씨를 죽인다고."
"그랬습니까."
"그래서 나… 은시경씨…"
…죽이라고 했어. 고해성사를 하듯 고통스럽게 이어진 재신의 마지막 말은 시경의 품에 갇혀 밖으로 거의 새어나오지 않았다. 누가 듣기라도 할 듯 재신을 품에 꼭 당겨 안은 시경이 재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잘하셨어요. 재신의 눈에서 끝내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공주님은, 강하세요. 잘하셨어요.
"절대로 죽지 않을거라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전하와 왕비님을 모시고 공주님께 돌아가겠다고."
"시경씨…"
"그러니 괜찮습니다. 절대, 공주님 혼자 두지 않을겁니다."
기사가 공주에게 맹세의 서약을 올리듯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한 시경이 그대로 재신의 입술로 파고들었다. 모든 불안을 삼켜버리려는 듯 몰아치는 시경에 재신이 시경의 목에 팔을 감아 당겨 응한다. 갈급하게 입술을 삼키고 재신의 입 안을 훑어내던 시경이 재신의 옷 안으로 손을 넣으려 하자 급하게 재신이 시경의 손목을 잡았다.
"나, 다리가…"
"괜찮습니다."
"안돼… 시경씨도 다쳤고, 나, 다리…"
"괜찮아요."
"그, 그래도… 다리… 움직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데… 평소랑 다른데…"
"…공주님."
시경이 불안에 가득찬 재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공주님을 안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재신이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젓지도 못한다. 허락하지 않으셔도, 공주님을 안을겁니다. 그대로 재신의 몸이 침대에 눕혀지고 재신의 붉은 머리카락이 흰 시트 위에 흩어졌다. 하으, 임시로 입은 항아의 잠옷이 벗겨지자 목덜미에 와닿는 뜨거운 숨에 재신이 참았던 열기를 뱉어냈다. 확신. 서로가 온전히 다시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시경은 한번도 재신을 무조건 안겠다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허락을 구했고, 그가 묻기도 전 재신이 허락했다. 그러나 재신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지금 시경은 그녀를 무조건 안겠다고 선언했다. 재신은 시경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자신을 보는 시경의 눈이 느껴졌다. 자신을 원한다 말하는 그 곧은 눈동자가 얼마나 재신을 안도하게 하는지 시경이 알까.
"아프세요?"
"아니, 안 느껴져서 모르겠어요. 시경씨는… 어때요? 나, 평소랑 비슷해…?"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역시 그렇지…?"
시경이 조심스레 재신에게 자신을 겹치고 이윽고 시경이 몸이 완전하게 재신을 덮었다. 평소와 다른만큼 하나하나 조심스러웠다. 재신이 시경의 머리를 당겨 자신의 가슴에 묻었다. 나, 여기는 느껴지니까…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입술과 움푹 패인 등을 쓸어올리는 손길에 재신의 숨이 가빠졌다. 평소처럼 시경의 허리를 감지 못하고 축 늘어져 침대에 인형처럼 놓인 재신의 다리를 시경이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눈 뜨세요. 스르륵 열리는 눈동자에 오롯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다녀왔습니다, 사랑하는 공주님. 비로소 공주의 떨리는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응, 어서와요.
84.
"저, 전역하려고요."
"응? 왜요…?"
나란히 누워 시경의 맨 가슴에 뺨을 대고 있던 재신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전하께서 생각해보라 하셨어요. 결혼하면 근위대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할건지.
"군에 돌아가도 되잖아요."
"그것도 생각하지 않은건 아닌데, 상관들이 불편해할거에요. 그리고…"
아무래도 손이. 시경이 재신을 다독이며 웃어보였다. 재신의 얼굴이 일그러지려 하자 시경이 그대로 손을 뻗어 재신의 뺨을 감쌌다. 괜찮아요. 정말로.
"이번에 알았습니다. 인정 안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위기 상황이 오면 또 안 움직일 수도 있을거에요."
"왼손으로도 잘 쐈잖아…"
"명중률도 떨어지고, 그러려면 훈련을 다시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왼손으로 된다고 해도… 이렇게 확연하게 약점이 있는건 군인으로서 좋지 않습니다."
"시경씨, 군인인거 좋아하잖아. 아직 갈 길도 많이 남았고 진급도 더 할 수 있는데…"
재신이 시경을 끌어안으며 웅얼거렸다. 시경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건 재신으로서 기쁜 일이었지만 재신은 시경이 군인이라는 그의 직업에 얼마나 자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고 살더라도 그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길 바랐다. 정작 시경은 평온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가 오른손 때문에 전역한다고 생각하니 재신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왜 시경까지 이런 불안과 고통을 계속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시경이 허리 아래로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려 재신의 드러난 등을 덮어주며 조근히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제가 아버지 일을 이었으면 하신대요. 계속 고민했어요. 결혼 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비서실로 갈지, 군으로 돌아갈지 선택이 어려웠어요. 후유증 때문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안고가야할 몸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행이에요. 군인이 아니더라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전하와 공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거. 저는 기쁩니다. 그러니까 공주님도… 마음아파 하지 마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시경씨…"
재신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물끄러미 시경을 보던 재신은 이내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경씨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요. 나는 다 좋아. 시경씨가 좋다면 그걸로 좋고, 위험하지 않은 일 하는 것도 좋고, 나랑 같이 계속 궁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좋아. 재신이 애써 걱정하는 기색을 지우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여태껏 시경의 목에서 군번줄에 함께 걸려 있는 반지를 재신이 빼냈다. 그리고 반지가 원래 있어야 할 시경의 왼손 약지에 다시 반지를 끼웠다. 시경의 왼손에 재신이 오른손을 맞대어 깍지를 끼자 반지가 서로 얽혀든다. 나처럼 부자인 신부도 없을걸. 왼손에도 반지 있지, 오른손에도 반지 있지. 짠. 재신이 장난스레 양손을 들어보였다. …헐거워져서 빠지겠어요. 많이 드셔야 합니다. 또, 또 교과서질. 뾰루퉁하게 입술을 내밀던 재신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시경이 재신의 목에 걸린 자신의 옛 군번줄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선물은 별로야."
"다른걸로 해드릴게요."
"다른거 뭐, 다른 군번줄?"
"아무리 제가 센스가 없어도 설마 그럴리가요."
이런건 커플로 하기 싫어. 그래도 시경씨 전역하면 이젠 군번줄도 없겠네… 뺨을 대자 살갗에 닿는 금속이 차갑다.
"오빠는… 뭐래요?"
"아직 말씀 안드렸습니다. 곧 드려야지요."
"비서실로 가면 실장님처럼 오빠가 은시경씨 엄청 부려먹을텐데."
"그건 지금도…"
"그렇긴 해. 세상에 이렇게 일 많이 하는 근위대장은 없을거야. 근위대장이 호위만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일을 많이 시키는지 지금도 뭐 비서실장님이랑 다를게 뭐람. 타이틀 붙여주면 아주 그냥 대놓고 부려먹을텐데 어떡하지?"
"공주님이 지켜주시면 되죠."
"내가 맨날맨날 쫓아가야지. 은시경씨 정시출근 칼퇴근은 내가 사수할거야."
다짐하듯 입을 앙다물고 말하는 재신을 시경이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한동안은 좀 쉴까요. 사가 완성되는 것도 봐야 하고… 가구나 공주님 드레스도 봐야 하잖아요. 행여나 오빠가 쉬게 해주겠어요. 그 날부터 부려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돌아가면 이번 일 수습하려고 쌓인 일이 태산일텐데. 그래도 말은 해볼게요. 드레스, 보러 가기로 했는데 늦어져서 어떡해요. …기억하고 있었네.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 다리도 안 움직여서 가지도 못할걸. 근데 은시경씨, 나 스튜디오 촬영 때 지난번에 보여준 미니드레스… 안됩니다. 가슴 부분 올릴게! 응? 안됩니다. 시경씨이. …안됩니다. 치이. 다른 드레스 고르세요. 같이 봐드릴게요. 그게 예쁜데… 뭐, 은시경씨가 싫다니 다시 고를게요. 근데 일단은 돌아가면… 좀 쉴래. 드레스도 지금은 보기 싫어. 네, 쉬어요. 쉬어요, 우리.
85.
"전하, 들어가시면…"
"아 괜찮아요. 내가 전에도 들어갔는데 얘네 진짜 손만 잡고 자고 있더라니까. 나 은시경이랑 자료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서. 야, 은시경! 이거 클럽M이랑 이쪽 정부 밀약… 어으어?"
"…전하?"
"너, 너, 너, 너, 너 이자식…!"
"쉿, 공주님 깨십니다."
"야, 너 어떻게 니가 재신이를…! 야!"
"여기서 뭐하고 있네? 지 올챙이적 생각은 못하고 무슨 낯부끄러운… 와서 아침이나 드시라요!"
"항아야, 안돼. 쟤 봐. 쟤가 저렇다니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쟤가 나한테 철썩같이 믿으라는 듯 약속해놓고는…"
"이 개철처리가 지금 뭐라고 하는거네? 빨리 나오라!"
"너 설마 그 때도… 야 은시경 너 진짜…!"
"으응, 시경씨… 누가 왔어요? …꺄아아아아아악!!!!!!!! 이재하 당장 나가!!!!!!!!!!!!!!!"
86. 그로부터 며칠 후, 네티즌 반응
[속보] 왕실 근위대 대대장 은시경 소령, 전역지원서 제출. 비서실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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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역하시네ㅜㅜㅜㅜㅜㅜ 그럼 이제 근위대 정복 못보는거?? 경호수트도 못보는거????
ㄴ 곧 부마되실 분인데 남의 호위를 받아야지 이젠 호위할 입장이 아니지 ㅠㅠ
ㄴ 비서실 가실라나?? 은규태 실장님 또 사표 내셨다던데
ㄴ 전에도 사표내신 적 있으심??
ㄴ ㅇㅇ 몇년 전엔가 한번 사표내셨음. 사표 아니고 국왕 전하랑 싸워서 전하가 해임했단 썰도 있었는데 모르겠다
ㄴ 그리고 얼마 전에도 한번 냈는데 반려됐다던데? 건강 안 좋으셔서 ㅇㅇ 그래서 요즘에 비서실장님 주말에 일 안하신다고 함
ㄴ 아마 비서실 갈듯 ㅇㅇ 근데 전에도 뭐 전하가 시키는 일 다하신거 아님?ㅋㅋㅋ
ㄴ oh oh 능력자 oh oh
ㄴ 군복 입은거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과거짤로 이 아쉬움을 달래야지
ㄴ 군대는 계급 꼬여서 돌아가기 힘들듯 ㅇㅇ 전역할거 같긴 했다
ㄴ 전역할거 같긴 했다2222 군대는 상명하복이 생명인데 자기 밑으로 들어온게 부마.. 어쩔..
ㄴ 그럼 은부마를 진급시키면 안됨??
ㄴ 진급에도 필요한 시간이 있고 조건이 있음 아무리 은부마가 구국의 영웅이지만 무조건 별달아줄순 없지
ㄴ 은부마가 일적으로도 특수케이스고 공주님이랑 결혼하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막 진급시켜주면 기강문제 사기문제
ㄴ 결정적으로 은부마가 싫어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ㅇㅇ 진급 시켜준대도 싫어할듯...
은부마 전역하는거 고문 후유증 때문이라는게 김트루?
ㄴ 고문??????????????????????????????
ㄴ 은부마 언더커버 때 고문당한건 다 아는 비밀 아님?
ㄴ 고문 후유증이 얼마나 무서운데.. 있다고 해도 안 이상하긴 하다
ㄴ 공주님도 컨디션 안 좋으면 다리 아직도 불편하시다던데 둘 다 안쓰럽다ㅜㅜ
공주님 건강 괜찮으신가 모르겠다 섭정이 힘드시긴 했나봐
ㄴ 근데 왕실 분위기 요즘 심상치 않았다던데.. 우리 언니 친구 동생이 왕실 조리사인데 얼마전에 갑자기 연락 불통되더니 엊그제인가 겨우 연락 되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갑자기 왕실 전체 인터넷 끊고 외부연락 차단하고 휴대폰 다 압수해갔었다고 그러더라 왜 그런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ㄴ 헐;; 레알?? 뭔 일 있었나?;;
ㄴ 공주님 다리 때문인가?
ㄴ 야 너 이상한 루머 퍼뜨리지 마라 공주님 다리 괜찮다잖아
ㄴ 워워 둘다 진정 공주님 예전에 악성루머 시달려서 다들 예민한거 알지만 좀 진정들 해라 그리고 상식적으로 그거 땜에 그렇게 요란하게 연락을 차단했겠냐 다른 이유가 또 있었겠지
ㄴ 나 위에 언니 친구 동생 얘기 쓴 앤데 공주님 힘들어서 다리가 불편하시긴 하다고 함 근데 그게 컨디션 안좋으면 전에도 있던 일이라 큰 일 아니라던데 걱정 안해도 될듯
ㄴ 그럼 연락은 왜 차단한거지 궁금하다
ㄴ 왕실 공홈에 공주님 다음주 공식일정 다시 떴다 ㅇㅇ 괜찮으신가봄
이 와중에 듀엣곡 음원 떴다!!!!!!!!!!!!!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개쩔어!!!!!!!!!!!
ㄴ 아놔시발 은부마 목소리 왜 이렇게 좋음?????????? 가수임????????????? 노래 왜 이렇게 잘함?????????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영화다.. 세기의 커플이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질투도 안나 이젠
ㄴ 전하랑 왕비님 음원은 언제 뜸?
ㄴ 다음주 화요일에 뜬대 ㅇㅇ
ㄴ 공홈에 메이킹 영상 떴다!!
ㄴ 공주님이 헤드폰 씌워주는거 봐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씹덕돋는다 둘이 헤드폰 쓴거 ㅜㅜㅜㅜㅜㅜ
ㄴ 은부마 헤드셋 존나 씹덕터져....
ㄴ 아 진짜 케미 쩐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케미 갑이여....
ㄴ 노래 짱잘해 뭐임 존나당황 공주님이야 당연한건데 은부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그만좀 시발시발거려랔ㅋㅋㅋㅋㅋ 근데 나도 좋아서 욕밖에 안나오는게 함정ㅋㅋㅋㅋㅋㅋㅋ
ㄴ 화음 넣는데 은부마가 고음파트야..... 쩌러......
ㄴ 그부분 대박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짱 좋음... 뮤비 안찍어주나 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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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문자수가 종영 직후보다 더 많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걸까요… 성원에 감사하면서도 어쩐지 떨고 있는 저. 지난 화에 너무나 감사한 많은 덧글을 받아서 굉장히 감동했습니다. 게다가 제게 과분할 정도로 주시는 칭찬들에 언제나 저는 고래와 함께 춤추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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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플은 그냥 평범하게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읽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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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약점이 생기고 안고가야 할 짐도 생깁니다. 저도 어리지만 살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자신의 짐을 인정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첫번째 발걸음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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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길게 아련한 이야기도 쓰고 궁에 돌아와서도 내도록 후유증에 신체적 정신적 고생하는 공주님과 은소령도 쓸까 싶었는데 뭘 이리 괴롭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볍고 따스하게.
은소령은 이상한데서 당당할거 같은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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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주말도 즐겁게 보내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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