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근위대원의 날들 - 1
여지껏 써왔던 글들과는 약간 시간 순서가 다름.
- 여지껏: 은시경 총맞음->2년 반->돌아옴 (아직 공주님 못 걸음)->연애 들킴->공주님 걷게 됨->약혼->은시경 근위대 그만두고 군으로 돌아감->결혼
- 이 글: 은시경 총맞음->2년->돌아옴 (공주님 이미 걷고 계심)
시리즈로 몇 개 더 짧게 쓸 예정. 다 쓴 뒤에 한번에 올릴까 하다가 그건 그거대로 좀 길거 같아서 일단 여기까지만. 이대로 끝내면 서 중사는 뭐냐며.
아주 약간 수위.
티스토리에 손님들이 많이 와주시는 것 같다… 디씨에 이제 신상은 그만 팔아야겠다.
1.
"서 중사, 오늘도 잘 부탁해요."
재신의 우아한 미소에 왕실근위대 2중대로 배속된지 한 달이 갓 넘어가는 신입 서 중사의 입이 슬금슬금 귀에 걸린다. 모든 근위대의 꽃, 이재신 공주. 왕실의 두 꽃인 왕비와 공주는 미모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건 왕비는 왕의 아내. 왕비님 훔쳐보다 뒤끝 쩌는 국왕 전하에게 보복당한 근위대원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자연스레 근위대의 아이돌은 공주로 수렴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웃어주고 공평하게 다정한 이재신 공주. 공주의 사고 전부터 근위대에 있었다는 염동하 대위가 남들보다 공주와 조금 더 친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특출난 수준은 아니었다.
공주는 언제나 우아하고 지적인 모습이면서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전엔 더러 근위대원들 몰래 도망치고 홍대에서 발랄하게 놀며 파파라치를 찍히기도 했다는데 왕실에 대한 테러와 그녀의 사고가 어지간히도 성격을 바꾸긴 한 모양이었다. 사고와 장애를 이겨내고 그녀는 완전하진 않지만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예전과 같이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여전히 비주류 문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장애를 잊지 않고 장애인 관련 행사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공주를 의지와 재기의 상징으로 여기며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가까이 있는 근위대는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공주의 공허한 눈을. 뭐가 그리 공주를 아련하게 만드는지 서 중사는 알 수가 없었다. 옛날부터 있었던 근위대원들에게 물어봐도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다. 서 중사는 많은 다른 근위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어느새 공주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몰래 공주의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호위를 맡을 때면 웃어주는 공주에게 설레며 공주의 호위만을 기다리는 날이 계속 되었다.
2.
그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어느 화창한 초여름이었다.
"야야, 이것들 늦는거 봐라. 아침에 제깍제깍 안 모이냐."
"그러는 중대장님도 지금 가고 계시지 말입니다."
"너네가 나보다 빨리 가야지, 지금 나랑 같이 들어가려고 그러냐?"
아침부터 복도에 왁자하게 모여 다같이 근위대 회의실을 향하는 길이었다. 조금 늦었다 싶어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걷다보니 김 소위를 만나고, 또 걷다보니 앞에서 걷고 있는 염동하 대위를 만나고, 그러다보니 그 날 호위 담당인 근위대원들이 다같이 회의실을 향해 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좀 빨리빨리 다니라는 염동하 대위의 타박을 들으며 회의실 문을 연 서 중사의 눈에, 창가쪽에 선 채 사복 차림으로 일지를 읽고 있는 낯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
"어? 뭐, 뭐야!"
놀란 근위대원들이 소리를 지르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 중사의 등뒤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났다.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린 염동하 대위의 눈이 커다랗게 뜨인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처음의 중대장은 당연히 염동하 대위를 가리킨 것이었다. 하지만, 염동하 대위의 '중대장님'이라는 호칭은 스스로를 향한게 아니었다. 앞의 남자를 향한 것이었다. 다시금 남자를 돌아본 서 중사는 이 남자를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지, 어디더라.
"…염동하, 빠져가지고. 언제부터 근위대 회의시간이 이렇게 늦었어?"
"지, 진짜 중대장님이십니까? 어, 어떻게…"
"전하께서 연락 안하셨어? 나 오늘부터 복귀인데. 내 정복 좀 가져와라."
"아니, 오늘부터 복귀…가 문제가 아니고, …진짜 중대장님이십니까? 한번만 만져봐도 됩니까?"
"중대장은 너고. 나 죽고 나서 니가 2중대장이라며."
…죽고 나서? 그제야 근위대원들 사이에서 누군가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서 중사도 깨달았다. 눈 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은시경 대위다. 존 마이어 체포 작전 때 순직한, 전 왕실근위대 2중대장 은시경 대위. …순직한? 죽은 사람? 죽은 사람이 왜 여기에?! 모두들 귓가의 솜털이 쭈뼛 선 얼굴로 시경을 쳐다보자 무뚝뚝한 표정으로 시경이 근위대원들을 죽 훑어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에서 총 맞고, 죽다 살아난건 맞는데 그 후엔 국왕직속명령으로 비밀리에 클럽M쪽 처리할 자료 모으느라 좀 시간 걸렸어. …염동하, 그만 울고 내 정복 좀 가져와. 내가 지금 사복 입고 궁 안을 돌아다녀야겠어?"
"주, 중대장님, 옷, 죽은 사람 물건이라, 흡, 태웠는데…"
"그럼 새거 가져와. 그리고 중대장이라고 부르지 좀 마."
어지간히 놀랐는지 늘 능글맞아 전하와도 죽이 잘 맞는 염동하 대위가 눈물을 그치질 못하고 있었다. 시경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약간 난처한 빛을 띤 시경이 동하에게 걸어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미안하다. 정복 소매로 눈가를 슥슥 닦은 동하가 직접 창고로 시경의 새 정복을 가지러 가자 시경을 처음 본 근위대원들이 급 시경에게 경례를 붙였다.
죽은 줄만 알았던 은시경 대위가 돌아왔다는 것은 금방 알려졌고, 그가 얼마 전 길고 긴 물밑 전쟁 끝에 이긴 클럽M과의 국제재판에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면서까지 큰 공을 세웠다는 것 또한 국왕 전하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순직으로 이미 한 번 영웅이 되었던 은시경은 살아 돌아오면서 정말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은시경은 소령으로 1계급 특진했고, 왕실근위대 대대장으로 복귀했다.
서 중사는 눈만 껌뻑거렸다. 은시경이다. 우와.
3.
그 날은 공주님의 공식 일정이 있었다. 은시경 대위, 아니 은시경 소령이 복귀한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공주님의 호위는 언제나 그렇듯 2중대에서 맡았고 서 중사도 차출되었다. 경호를 위해 미리 집합한 근위대원들 사이엔 은시경 소령도 있었다. 서 중사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보통 근위대장은 현장으로 나오지 않는다. 궁에 머무르며 총괄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현장에 나오는게 체질인가? 꼼꼼하게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시경을 보며 서 중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공주님 들어오십니다."
공주님의 궁인이 먼저 들어와 알리고, 이윽고 문이 열리며 재신이 들어왔다. 재빨리 모든 근위대가 일렬로 정렬해 경례를 붙였다. 흰 블라우스에 연한 하늘빛이 섞인 치마를 입고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재신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또렷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근위대 한 명 한 명의 경례를 받으며 재신이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했다. 서 중사에게도 그 예쁜 미소를 지어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공주님의 부드럽고 하얀 손.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는 재신이었다. 차례로 인사를 끝낸 재신이 마지막으로 시경의 앞에 섰다. 자연스럽게 모든 근위대원들의 시선이 재신과 시경을 향했다.
죽 위아래로 시경을 훑어본 재신이 덥썩 시경의 잠긴 자켓 단추를 쥐고 자켓을 풀려 하자 시경이 재빨리 자켓자락을 쥐었다. 서 중사의 눈이 커다래졌다. 한 번도 근위대원에게 손을 대거나 한 적이 없는 공주님이었다. 재신이 새침한 표정으로 시경을 올려다보았다.
"손 올리죠? 나 아직 경례 다 안받았어요."
시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손을 올리자 재신이 시경의 자켓 단추를 풀고 더듬더듬 셔츠며 안쪽 포켓을 더듬는다. 거침없는 재신의 손길에 근위대원들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자켓 안쪽에서 시경의 신분증을 찾은 재신이 신분증과 시경을 번갈아가며 본다. …아, 처음보는 얼굴인건가? 모르는 사이인가? 서 중사의 고개가 다시 기울어진다.
"왕실근위대 대대장 은시경 소령. 흐음. 소령이에요? 젊어보이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근위대장님께서 궁에 안 계시고 현장까지 나오셨네요. 안 바쁜가봐요?"
"공주님 호위가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흐으음, 재신의 눈이 가늘어진다. 도도한 얼굴로 시경의 신분증을 보던 재신이 시경의 자켓 안쪽에 다시 신분증을 꽂아주고는 단추까지 잠가준다. 그리고는 한 발 뒤로 살짝 물러나 가볍게 경례를 받는다. 공주의 입가에 장난스럽게 번진 미소가 환하게 피어난다.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 서 중사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복귀 축하해요, 은시경씨."
"감사합니다."
"뭐, 이미 여러번 한 얘기지만요. 내 호위는 오늘이 첫 복귀잖아요. 이제 근위대장님인데, 앞으로도 계속 내 호위 따라다닐거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주님 호위가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지켜볼거에요."
환하게 웃은 재신이 빙그르르 뒤돌자 재신의 치맛자락이 팔랑거렸다. 몇 걸음 걸어가던 재신이 다시 휙 돌아 시경과 눈을 마주쳤다. 눈부신 미소였다.
"나 이젠 품위 있는 공주니까, 잘 부탁해요."
윙크를 하는 재신을 보며 시경의 입가에도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근위대원들은 이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4. 서 중사는 모르는 이야기 1
재신의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재신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앵무새가 푸드득 날고, 손에 들려 있던 책은 카페트로 추락했다. 어, 어떡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눈물로 젖기 시작했다. 재신의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재신이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았다. 말도 안돼. 내가 꿈을 꾸나봐. 나 상담 더 받아야 하나봐. 환각이 보여. 그런 재신에게 눈 앞의 시경이 천천히 다가왔다.
"공주님."
꿈, 아니에요. 환상도 아니에요. 저에요, 공주님.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재신의 떨리는 손이 시경의 얼굴에 닿았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에 재신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맞닿은 서로의 온기가 신호라도 되듯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를 끌어안고 급하게 입을 맞추었다. 한 순간이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시경의 팔이 단단하게 재신을 안았고 재신의 손이 시경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닿을 수 없었던 이와 다신 만날 수 없다 생각했던 이가 만나 몇번이고 갈급한 체온을 나누었다. 입술이 닿아도 닿아도 부족한 느낌에 재신은 숨이 막히도록 시경의 입술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시경 역시 재신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려는 듯 한 손으로 재신의 뺨을 감싸고 재신의 입술을 문 채 놓아주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입술로 흘러들었다.
시경을 꼭 붙든채 재신이 뒷걸음질을 쳤고 자켓을 벗어던진 시경이 그대로 재신을 침대에 눕히고 키스를 이어갔다. 호흡이 모자란 재신이 밭은 숨을 내뱉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입술을 놓아준 시경이 급하게 재신의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고 머리끈의 매듭이 풀린 재신의 머리카락이 침대 위에 흩어졌다. 뜨거운 숨만이 두 사람 사이를 메우고 재신은 시경의 단단한 몸에 매달려 숨을 할딱였다. 끊임없이 재신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며 시경은 몇 번이고 재신의 뺨과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아, 아흐읏, 빈틈없이 맞닿은 몸이 침대에서 출렁였다.
"…어떻게, 된거에요. 뭐에요, 이 상처. 응?"
"총에 맞았어요.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았어요. 클럽M 완전히 쓸어버리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죄송…"
죄송하다 말하려는 시경의 입술을 재신이 손가락으로 막았다. 죄송하단 말 하지 말아요. 나 화내지 않을거에요. 은시경씨 돌아온 것만으로도, 나 화내지도 않을거고 나한테 말 안했다고 서운해하지도 않을거에요. 그러니까 죄송하다고 하지 말아요. 나, 은시경씨 이제 알아요. 은시경씨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다시 눈물이 차오르려는 재신의 눈가를 시경이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가슴 아래 난 총상 흉터를 혹여 아프기라도 할까 조심스레 매만지는 재신을 한 팔로 품에 안은채 시경은 재신의 얼굴을 몇 번이고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보고 싶었어요, 공주님."
"거짓말."
"좋아해요, 공주님."
"…거짓말."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공주님. 너무 늦게 돌아왔지만, 그래도… 진심이에요."
흐윽, 결국 또 재신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재신은 시경의 벗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이제 어디 가지 말아요, 나한테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그런거 생각도 하지 말아요. 어디 가지마. 그런 재신을 꼭 끌어 안으며 시경은 몇 번이고 재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아무데도 안가요. 공주님이 가라고 하셔도 안 갈겁니다."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마주 닿고 뜨거운 열기를 나누고 나서야 재신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시트 자락으로 꾹꾹 눌러 닦으며 시경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자세를 바꾸다 아려오는 허리에 재신이 얼굴을 작게 찡그렸다.
"아파요."
"괜찮으세요?"
"아파요. 처음인데 안 아플리가 없잖아."
"…네?"
약간 멍한 얼굴이 된 시경을 올려다보던 재신의 눈꼬리가 뾰족해졌다. 이 사람 봐, 날 얼마나 발랑 까진 공주라고 생각한거에요? 왜요, 맨날 클럽 가서 노래 하고 그러니까 남자도 많을 줄 알았어요? 나 그런 공주 아니거든요! 새침한 얼굴로 노려보는 재신을 보는 시경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휙, 시경이 몸을 뒤집어 자신의 아래에 재신을 가두었다. 왜이래, 나 아프단 말이에요. 얼굴이 빨개진 재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시경이 웃었다.
"보고 싶었어요, 공주님."
"아까도 말 했잖아요."
"사람이 성격이 변하나봐요."
"…응?"
"2년동안 없는 사람 되어서 해외 떠돌다보니 깨달았어요. 제 마음 숨기고 밀어내는거, 얼마나 시간낭비인지. 여태까지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는지."
"……은시경씨…"
"이제, 정말 답답하게 안 살려고요. 적어도… 공주님에 대해서는."
촉촉하게 젖은 재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재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 2년간 한 번도 진심으로 웃을 수 없었던 재신이 처음으로 내보인 진실된 미소였다.
사람이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면 나는 어느 정도는 삶의 가치관이나 성격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재신 공주의 사고, 재강 전하의 죽음, 그 기억들, 그리고 은시경이 죽었다고 믿었던 날들은 아마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경험들 중 가장 강력한 종류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공주님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은소령도 마찬가지다. 공주님과 전하를 알기 전의 은시경과 알고 난 후의 은시경이 같지 않고, 아버지의 죄를 알게 된 후의 은시경과 후의 은시경이 같지 않듯, 기나긴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게 된 은시경 또한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긴 시간을 의도치 않게 공주님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은시경이니 적어도 공주님에 대해서는 덜 답답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나자마자 저렇게 된…거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냥 내가 재우고 싶었음. 둘 좀 재우고 싶었다… 둘이 꽁냥하게 나체로 침대에서 꼭 붙어 있는게 보고 싶어서. 참고로 저긴 제주도 별장임. 재판 끝나고 재하 전하가 재신 공주 싫다는거 반강제로 제주도로 보내버림. 그리고 귀국한 은시경 곧장 그리로 보냄.
물론 막내 여동생 둔 오빠로서 재하는 남자=다 늑대라고 생각하겠지만 동생과 시경을 위해 동생 후원에 데려다 놓고 반경 2km에 바리케이트까지 쳐줬던 전하니까, 긴 시간 서로 겨우 마음 확인하고는 애틋하게 (심지어 한 쪽은 죽었다고 믿으며) 떨어져 있어야 했던 두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잘 되길 바라는건 역시 국왕 전하일 것 같아서.
복귀해서 호위 나왔을 때, 첫만남 때 재연하며 꽁냥하게 노는 두 사람도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 공주님이 자켓 단추 콱 잡을 때부터 은소령도 장단 맞춰주겠지. 사랑스러운 두 사람.